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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 Thomas Beecham

1879 - 1961


 

토머스 비첨은 82년의 생애 가운데 50년 이상을 같은 영국의 작곡가 프레데릭 딜리어스의 적극적인 지지자로 지냈다.

콘서트 홀에서도 오페라하우스에서도 그리고 레코딩 스튜디오에서도 비첨은 딜리어스 작품을 즐겨 연주하고

그에게 힘을 주었다.

게다가 딜리어스 전기(1955년)까지 남겼다. 한 사람의 지휘자가 어떤 특정한 동시대의 작곡가에게 반생을 넘게 헌신한다는 건 지휘자가 권력을 가진 시대인 20세기에 있어서는 드문 현상이다.

빛을 잃고 반신이 마비된 만년의 딜리어스의 눈이 되고 손발이 되어 작곡을 도운 에릭 펜비는, 비첨에게 무슨 계기로

딜리어스에게 끌렸는가 하고 물은 일이 있다.


프레데릭 딜리어스란 작곡가가 있었지. 나는 그와 만난 적도 없고 그의 소문조차 못 들었어. 그런데 그의 음악은 다른

어떤 작곡가가 만든 것과도 달랐지. 즉 당시 - 1907년 쯤인데-  쓰인 어떤 곡과도 다른 거야.

무슨 악마가 이런 음악을 만들었는지 아무도 몰랐지. 그건 변덕쟁이 여자처럼 나를 유혹했기 때문에 좀 잘 길들여 볼까 하고 결심했던 거지.


하지만 하루만에 될 일이 아니었어. 


제1차 세계대전 후 강렬하고 야성적인 음악이 숭배되던 시대에 딜리어스의 음악은 '안개 낀 듯하다'라든가 '흐물흐물하다',  '순진하고 감상적', '퇴폐적 일만큼 로맨틱하다'는 등의 말로 치부되었다.

 

그의 화성은 해결을 보지 않는다. 그것은 감지하기 어려울 만큼 미묘하게 새로운 형태 속으로 용해되어 간다.  무능한 지휘자의 손에 걸리면 그것은 런던의 누르스름한 안개처럼 되어 버릴 것이다. 비첨은 내성부를 꿰뚫고 가는 한 줄기 선율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며 곡에 형태를 부여한다. 딜리어스가 즐겨 사용한, 또 아주 정교했던 디비지(현악의 분할법)나 감상적인 오케스트라의 색채를 구성하는 방식은 그야말로 마술에 가깝다.


비첨이 후세에 남긴 유산 가운데 딜리어스의 녹음은 가장 잘 정돈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두 매의 스테레오 녹음은 지금 들어도 아름답게 들린다. 한 장은 「브리그 페어 (영국 광시곡), 「동트기 전의 노래」, 두 개의 소품 (마르슈 카프리스와 「썰매타기의 <겨울밤>) 등이 실려 있고, 다른 한 장에는 「봄날 처음 듣는 빠꾸기 소리 등이 있다. 두 장 모두 로열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의 녹음이다.

 

비첨의 <딜리어스 녹음 집대성>은 「딜리어스의 음악 제1권과 제2권의 복각 음반 세트로 들을 수 있다. 이 두 권은 딜리어스를 듣기 위해서는 바이블과 같은 존재이므로 꼭 갖췄으면 한다. 소프라노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는 비첨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녹음했을 때를 회상하며 말한다.

 

작업 도중 그녀가 갑자기 자취를 감춘 바람에 녹음이 중단된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그것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그 상황은 그녀의 책임도 비첨의 책임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중단된 녹음은 1년이나 후에 재개되었다.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비첨이 크게 화가 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첨 경은 양팔을 크게 벌리고 <어서 와 나의 카르멘!> 하며 나를 맞아 주었습니다. 녹음은 그 이상 없을 만큼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우리 모두 만족한 가운데 끝났습니다. 듣는 이들은 그 생기 발발한 연주가 2년이나 걸렸다고는 알지 못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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