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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em Mengelberg
1871-1951
50년 동안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멩겔베르크는 1871년 3월 28일, 네덜란드의 유트레히트에서 태어났다. (토스카니니보다 4살 연하이고 발터보다는 5살 연상이다)
그의 선조는 독일의 명가문 출신이었다. 그는 쾰른 음악원에서 프란츠 바그너에게 사사했고, 피아노과, 지휘과, 작곡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 깊은 해는 1895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보다 7년 전에 설립된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빌렘 케스의 후임으로 뽑힌 것이다.
이 새로운 오케스트라를 일류로 만들기 위해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그의 지휘 기술 향상을 위해서는 귀중한 체험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동안 작곡가 그리그,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지휘자인 한스 리히터와 친구가 되었다.
1920년대에는 자주 다른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를 하고 1928년부터 1931년까지는 토스카니니와 함께 뉴욕 필의 지휘봉을 잡았는데 그 이후로는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에 전념하였다.
19세기 독일 낭만파 음악을 가장 잘 체현한 것이 멩겔베르크의 해석과 연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악보가 요구하는 데서 일탈하지 않지만, 허용 범위 내에서 선율과 리듬, 템포를 자유자재로 조절하여 한층 악상을 고조시키고 있다.
스케일이 크고 정확하고 웅대한 기풍을 지닌 의기 양양한 연주는 듣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다. 정신적 골격이 튼튼하고 신경이 굵고, 박력 있으며 호방한 대인의 풍모를 지녔다. 반면, 감정을 가라앉히거나 혹은 섬세한 정서를 잔잔히 노래하고 미세하게 신경을 곤두세워 서정성을 자아내는 부분은 마치 딴 사람이라도 된 듯이 양쪽을 훌륭히 조화시킨다.
그는 크나퍼츠부슈나 푸르트뱅글러 같은 마술사도 아니고, 최면술사도 아니다. 또 발터처럼 윤리적 명상가도 아니다.
그는 눈을 맑게 빛내며 위풍당당한 태도로 주위를 둘러보면서 어깨로 바람을 가르는 장대한 남자의 낭만을 노래하면서 또 길섶의 이름 모를 작은 꽃을 사랑하는,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활보하는 남자다운 로맨티시스트이다.
그는 자의적인 몽상가가 아니다. 자유로운 해석을 하긴 하지만 결코 왜곡이 없었다.
그는 악보에 무수히 상세한 사항을 써넣었다. 템포를 빠르게 하는 곳, 템포를 늦추는 곳 등 아고직을 붙일 곳, 리타르 단도나 루프트파우제의 지정, 페르마타의 길이 등.
따라서 로맨틱한 해석이라 해도 결코 크나퍼즈부슈나 푸르트벵글러와 같은 즉흥성이 없었다. 그뿐 아니라 철저하게 계산된 연주를 반복함으로써 그의 연주 작품들은 자기의 혈육처럼 되어 버렸고, 몇 번을 연주해도, 몇 년 뒤에 연주해도 해석에 큰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연주할 때마다 다른 해석을 보이는 푸르트벵글러의 연주와는 정반대의 극에 서 있다 할 수 있다.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아메리카 빅터 시리즈,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콜롬비아 판, 텔레풍켄 판, 필립스 판의 연주를 들어 보면 같은 곡일 경우 어떤 연주나 거의 다르지 않은 것에 놀라고 만다. 이것은 자기 쇄신의 측면이 없다고 하기보다는 안정된 해석과 연주라고 평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게다가 오케스트라의 파악과 통솔 등 기술적인 면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자기의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는 말할 것도 없고 타인의 집단인 뉴욕 필을 객원 지휘할 때에도 수석 지휘자 토스카니니에게 한치의 양보도 없이 전체의 균형이 대단히 잘 잡혀 있다.
그가 소리를 만드는 바탕은 발터나 다른 독일, 오스트리아계 지휘자와 마찬가지로 중점을 저음현에 두고 각 악기를 그 위에 쌓아 올리 는 방법인데 그만큼 울림이 묵직하고 안정감이 생긴다.
오랜 세월에 걸쳐 동고동락한 자기의 오케스트라인만큼 그와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 사이에는 간격이 없다. 양자는 혼연히 융합되어 있다. 또 단원 전원이 밀착된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있다. 독주 파트를 담당하는 단원도 전체에서 떠오르거나 분리되는 일이 없다. 더군다나 그의 지휘 테크닉이 아주 치밀하고 솜씨가 좋아서 모든 단원에 게 그의 의도가 명료하고 쉽게 전달되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그만한 일체감은 얻을 수도 없는 것이고 또한 바로 그 때문에 그렇게 자유 활달한 연주가 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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