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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uro Toscanini
1867-1957


 

교향악에 대한 정열

 

토스카니니의 교향악 지휘자로서의 경력은 31세 때, 토리노 시립 관현악단에서 시작된다.

한동안 스칼라 극장를 떠나 있던 1903년 이후에도 이 오케스트라를 통솔하여 이탈리아 가지를 순회 공연하였다.

그러나 지금도 들을 수 있는 레코드는 그가 최종적으로 갈라 극장을 사임한 후 활약했던 뉴욕에서의 녹음이 대부분이다. 1923년에 뉴욕 필과 뉴욕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합쳐 만든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에서 지휘를 맡아 1936년까지 재임하였고, 1937년에 NRC 방송이 그를 위해 새로 조직한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맡아 1957 년 은퇴할 때까지 계속

지휘하였다. 특히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오페라의 전곡 7개를 포함 방대한 양의 녹음을 남겼다.


그 전체 녹음에서 공통되는 것은,

같은 세대나 열두 살 정도 연하의 다른 지휘자들 대부분이 무르익은 낭만주의의 영향으로 작품을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는 하나의 전쟁터로 생각하여 자기의 주관적 해석을 집어 넣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자기의 주장을 억제하여 작품을

객관적으로 파악,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재현하기에 주력했 다는 점이다.

 

아론 코플란드가 그의 책 『음악 듣는 법」에서 적절히 지적했듯이 그것은 항상 음악이고 모든 예술 중에 가장 정열적인 음악이었던 것이다.

코플란드는 말을 이어 <토스카니니에게 강조되는 것은 언제나 선()이고 전체의 구성이다. 결코 세부나 특정 소절을 분리하여 강조하는 일이 없다. 음악은 자기 자신을 위해 움직이고 그 자신의 힘으로 살아 나가고, 우리도 그런 살아 있는 음악을 바라보는 행운을 얻은 것이라고 썼는데 이는 토스카니니의 최전성기인 뉴욕 필 시대의 연주, 그리고 NBC와 만든 잘된 작품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이러한 표현법으로 그는 당시 지휘계에서 소위 (신즉물주의) 의 선두 주자로 인식되었다. 피아노에서 신즉물주의적 연주의 선두 주 자인 기제킹이 1896년에 태어났고, 바이올린계의 대표격인 시게티가 1892년생인 것을 생각하면 새삼 토스카니니의 30여 년을 앞선 감각에 경탄하게 된다.


토스카니니는 악곡의 세부를 경시한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세부에 주의를 기울였는데 완성된 연주는 그런 세부의 효과만이 부각되어 들리는 게 아니고 항상 유기적으로 통일된 전체로서 인상을 준다.

 

한치도 흐트러짐 없이 일관되게 흐르는 리듬, 리듬과 화성에 늘 밀접히 연결되면서도 어디까지나 기악적인 선율도 특징적이다. 푸치니 오페라의 성악적 순수 선율풍의 감미로운 노래, 베토벤으로서는 드물게 유행가처럼 노래하는 전원 교향곡의 주제가 토스카니니의 손을 거치면 평온함 대신에 명확한 프레이징과 강한 악센트가 뒷받침되어 기악적인 기조를 띠는 것이다.

 

베토벤은 그래도 괜찮지만 푸치니의 「라 보엠」 같은 경우는 좀 어색해진다. 1막을 보면 결코 단조로움 템포를 취하지 않고 필요한 변화를 주어 연주하고 있지만 다른 지휘자의 연주, 가령 비첨 음반과 비교하여 실제로는 별반 차이 없음에도 훨씬 성급하고 경직되어 여유 없게 들리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토스카니니가 루바토(리듬 을 자유로이 조절하여 연주하는 것)를 배제하고 기악적인 선율을 만드는 탓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교향악의 분야에서는 이런 선을 처리가 구성의 큰 스케일과 어울려, 때로는 통속적인 명곡을 전례 없이 고귀하고 조소적인 음악으로 변모시키고 있는 것이다.

롯시니의 서곡이나 발퇴펠의 스케이터즈 왈츠도 그렇고 베토벤의 전원이나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교향곡 같은 데서도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또 같은 오페라라도 선율이 흐트러짐이 없고 보석을 깎은 듯한 베르디 후기의 작품 등에서는 푸 치니에서 단점으로 작용한 것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여 표현의 깊이를 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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