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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uro Toscanini
1867-1957



토스카니니가 세상을 뜬 것은 1957년, 90세 생일을 두 달 남짓 앞두고서였다. 

 

죽음 직전까지도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 한 테이프 편집 작업을 계속했다고 한다.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 뉴욕 필,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을 지휘하여 방대한 양의 레코드를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하프 스피드 마스터링 방식으로 녹음한 것이 두드러진다. 
이는 오리지널 테이프와 커팅 턴 테이블을 보통보다 반 정도의 속도로 해서 마스터를 만드는 것이다. 

 

살아 있을 때부터 자주 푸르트벵글러(1886~1954)와 비교가 되곤 하여 이 두 사람이 의 동세대인 듯한 착각을 갖기 쉬우나

토스카니니가 19세나 연상이다.
토스카니니와 같은 세대의 명지휘자로는 바인가르트너가 세 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두 살 연상이고,

영국의 명지휘자 헨리 우드가 세 살, 멩겔베르크가 네 살 연하이다.

이 동세 대 사람들 대부분이 과거의 인물이 되어 버린 지금, 10년 아래의 발터와 더불어 레코드가 대량으로 리바이벌되어

지금까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천부적인 건강으로 87세까지 지휘를 계속했던 이유뿐 아니라 

그 예술적 질이 시대를 앞서 나간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토스카니니의 업적을 연주사상 불이라 하는 이유는 크게 보아 두 가지다. 

 

우선 하나는 오페라 지휘자로서 대단히 진보적이어서,

이탈리아 오페라계의 인습과 격렬히 싸우면서 낡은 예술 형식이 있었던 사교장에 불과했던 오페라 하우스를

현대적이고 생동감 넘기는 예술 공연의 장으로 변모시킨 것이다.

1898~1902년, 1906~1908년, 1920~1929년 예술 감독을 역임한 스칼라 극장이 그 변혁의 주요 기 점이었다.


토스카니니를 불멸로 만든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세대 혹은 그 이전의 이탈리아의 지휘자에게는 그런 예가 없는데,

오페라 이외에 교향악, 관현악 지휘에 정열을 쏟아 그 분야에서 당시 신즉물주의라고 부른 참신한 방식으로

후세의 지휘자들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이다.

 

토스카니니는 스칼라 극장에 오기 전에 토리노 레지오 극장의 음악 감독이었는데 그 무렵 이미 토리노 시립 관현악단을 조직했고 스칼라 극장으로 옮긴 1898년에는 44회의 연주회를 열어 베토벤, 브람스, 슈베르트, 베를리오즈, 차이코프스키, 그리고 베르디 성가 4편의 초연 등을 지휘하였다.

 

토스카니니보다 25세 연하인 지휘자 디 사파타도 오페라와 콘서트의 지휘를 양립시켰고,

이후 아바도와 무티가 그 양쪽을 훌륭히 양립시키면서 활동하고 있는데 그들의 선구 역할을 한 것이 토스카니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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