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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uro Toscanini
1867-1957


오페라 지휘자로서의 혁신성 

 

오페라의 자연주의나 리얼리즘 수법은 이미 그 20년 전에 러시아에서 무소르그스키가 시도하였고, 

프랑스에서도 1876년 「카르멘 에 서 시작되었는데, 

이를 늦게나마 오페라의 발상지 이탈리아에 도입한 것은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 푸치니의 「라 보엠」이었다.

20대의 토스카니니는 이에 뜻을 같이 하여 이 공연의 초연을 지휘하였다.

또한 이탈리아의 보수적인 오페라계에서 경원하던 바그너를 젊을 때부터 적극 연주했는데,

28세 때 토리노의 오페라 음악 감독에 취임하여 최초로 연주한 곡목이 신들의 황혼이고,

31세에 스칼라 극장으로 이전했을 때는 가장 먼저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를 지휘했다.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파우스트의 겁벌」, 「예프게니 오네긴」 의 이탈리아 초연도 

제1차 스칼라 극장 예술 감독 시대에 이루어졌다.


이러한 실적을 바탕으로 1930년과 1931년에 비독일계 지휘자로는 처음으로 바이로이트에 초빙되었다.

 

1930년에는 「트리스탄과 이졸 데」와 「탄호이저, 1931년에는 「파르지팔」과 「탄호이저를 지휘했다.

그는 레퍼토리면에서 보수성을 타파했을 뿐 아니라 연출, 리허설, 극장의 관리와 운영 등 여러 면에서

오페라를 완전히 유기적으로 통일된 무대 종합 예술로 만들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한 진보적인 극장인의 한 사람이다.

 

그 단적인 예가 1923~1924년 시즌에 아돌프 아피아(1862~1928)를 스칼라 극장에 초청하여 「트리스탄과 이졸 데의

연출과 미술을 담당케 한 일이다.

연극사상 고든 크레이그와 함께 금세기 초 상징주의적 연출, 반(反) 리얼리즘 연극의 위대한 선구자이자

현대 무대 미술의 아버지로 평가되는 아피아는 본격적인 전기(電氣) 무대 조명을 탄생시키기도 했는데,

그 전기 조명으로 회화적 수법의 2차원 무대 장치를 건축·조소 수법의 3차원 무대 장치로 발전시켰다.

아피아는 이미 19세기 말부터 이러한 이론을 구체화하여 니벨룽겐의 반지」 4부작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연출 대본과 무대 장치의 스케치를 발표했는데 "반지"의 경우 바이로이트까지 갖고 갔으나 바그너의 미망인 코지마에게 무시당한 일도 있다고 한다.

그런 아피아를 불러 연출과 미술을 일임한 오페라 하우스는 토스카니니가 예술 감독을 하고 있던 스칼라극장이 처음이다. 아피아의 조국 스위스의 바젤 시립 극장이 그 뒤를 이었다.


아피아는 스칼라 극장에서 무대 장치를 단순하게 하고 조명을 음악과 일치시켜 무대 미술의 주역으로 끌어올렸다.

그의 새로운 연출 로 선보인 「트리스탄 (특히 3막)은 작품 자체의 상징주의적 본질에 잘 부응하는 것이었지만

이탈리아의 오페라 팬이 독일, 오스트리아 이상으로 보수적인 탓에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바이로이트의 「트리스탄」 등 1927년 이후 연출에 그의 발상이 재현되었고, 나아가 2차대전 이후에는 

빌란트 바그너를 중심으로 철저하게 상징주의적 양식화를 추구한 〈신 바이로이트 양식)으로 이어졌다. 

토스카니니는 리허설을 할 때 단역을 맡은 가수에게도 자기가 맡은 역할 이외의 부분까지 악보 전체를 잘 공부하도록 

했다. 그의 코치 방식은 극히 세부에 이르기까지 엄격했다고 한다. 그런 훈련의 결과 스칼라극장의 조화와 극적 표현력은 비약적으로 향상되고, 로마 등지의 오페라와 수준 격차를 벌렸다.


그러나 이렇게 오페라를 현대적인 종합 연극으로 변혁시키려는 그의 끊임없는 노력과 비타협적 성격은 가수들의 나쁜 인습이나 제작비를 적게 들이려는 극상 이사회와 종종 충돌을 빚었다.

 

이탈리아의 오페라계에 큰 영향력을 미치던 리코르디 패밀리기 그의 적으로 돌아서기도 했다. 토스카니니의 타협을 모르는 엄격한 태도는 오페라를 만드는 쪽에 대해서 뿐 아니라 청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극장에 온 귀부인 들이 모자를 쓴 채 관전하는 것을 허용치 않았고 오페라 상연을 발레 공연에 묶어 버리는 관습을 폐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토스카니니에게도 난제였던 것이 상연 도중의 앙코르 문제였다. 그의 제1차 스칼라 극장 예술 감독 시대는 1902~1903년의 시즌으로 끝나는데, 「가면무도회에 출연한 인기 테너 가수 지오반니 제나텔로를 앙코르에 응하지 못하게 하자 청중들이 소요를 일으켜서 사임한 것이다.

 

또 1908년에서 1915년까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의 예술 감독 을 역임하는 동안 유럽의 초일류 가수들을 한자리에 모아 배역을 맡기고 스칼라 극장에서 이미 효과를 본, 오페라를 통일된 종합 예술로 하는 방법론을 적용하여 황금시대를 구가했으나, 완벽한 상연을 위해 물 쓰듯이 경비를 써서 결국 이사회 측과 대립, 일곱 시즌 만에 사임하게 된다.
덧붙여 말하면 「신 그로브 음악 음악가 사전」에서 토스카니니 항 목을 맡은 데이비드 케언즈는 그의 인간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정력, 우직할 정도의 성실성, 불퇴전의 의지와 결부된 드센 성격, 광적일 정도의 완벽주의, 병적인 자기 비판 등이 특히 눈에 띄는 성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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