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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rre Monteux
1875-1964


몽퇴는 1911년부터 파리에서 콩세르 베를리오즈를 지휘했는데 연주회 지휘자로서 널리 인정받게 된 것은 메트로폴리탄 가극장을 그만두고 상임 지휘자로 취임한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시대(1919~ 1924년)부터이다.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에서 멩겔베르크와 공동 지휘를 했던 시대(1924~1934년), 그와 병행하는 파리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시대(1929 ~ 1938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시대(1936~1952년)가 이어졌다.

그리고 81세였던 1961년에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로 25년간의 계약을 맺었다(그의 죽음으로 계약을 이행치 못했다). 이 하나의 에피소드만으로도 그의 시대적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동안 구미의 주요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를 계속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프랑스의 오케스트라에서 책임 있는 지위에 오르지는 못한 점인데, 이는 파리 악단의 보수적인 경향 때문이기도 하고 동시에 몽퇴의 음악성이 파리 악단의 틀에 안주하기보다는 더욱 큰 스케일을 추구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유튜브에 간혹 그의 지휘 영상이 올라오기도 한다.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베토벤의 교향곡 (제1번이나 8번)의 연주를 보면 긴 지휘봉을 휘두르면서 유연하게 지휘하는 몽퇴의 모습에서 비바람에 견뎌 온 큰 나무를 연상시키는 의연한 태도와 온화하고 따뜻한 인간성이 느껴진다.

 
그 인상은 레코드로 듣는 몽퇴의 연주를 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된다. 교향곡이든 발레 음악이든 가극이든 혹은 협주곡이나 가곡의 반주자일 때든 몽퇴는 철저하게 작품과 듣는 이의 중개자의 입장에 서고 결코 자기를 과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코 그의 해석은 몰개성적이지 않고 오히려 절도 있는 가운데 그의 개성이 빛을 발하고 있다.

 

몽퇴는 1942년 미국 국적을 얻었는데 원래는 파리에서 태어난 유대계 프랑스인이고 음악 교육을 파리 음악원에서 받았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프랑스 음악가로 생각되지만 많은 동료들과 달리, 멋스러운 감각이라든가 세련된 뉘앙스가 가장 먼저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의 연주는 세련되었지만 본질적으로 건강하고 풍부한 감정이 넘치고 그러면서도 항상 양식을 갖추고 있다. 남의 부탁을 받고는 거절 못하는 성질이었고, 그의 강한 의지와 에너지는 쇠퇴의 극에 달한 오케스트라의 재건, 새로운 오케스트라의 훈련, 젊은 지휘자의 육성 등에 유감없이 발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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